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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우리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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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4,168회 작성일 08-12-1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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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우리의 소망

막5:25~34

2008. 12/14 11:00

고통도 감사의 조건이다.

한센스병(Hansens disease)에 대한 권위자 브랜드(Dr. Paul Brand)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루이지애나 주(州) 카빌(Carvill)에 있는 한센스병 환자 재활원의 원장이다. 영국 출장 때 일이다. 그는 영국의 몇 군데에서 일을 본 후에 여러 시간 기차여행 끝에 런던에 도착했다. 잠을 자려고 신발을 벗고 양말 한 짝을 벗었는데, 발뒤꿈치에 감각이 없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지만, 인도에서 수많은 환자를 수술한 경험이 있는 그에게 순간적으로 심각한 의심이 떠올랐다. 그는 기계적으로 일어나서 핀을 찾았고, 핀으로 발의 복숭아 뼈 밑 부분을 찔렀다. 그런데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는 핀을 더 깊이 찔렀다. 찔린 부분에서 피가 솟아났지만 전혀 감각이 없었다. 그는 자기가 한센스병에 감염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 병의 환자로 살아가야 할 자기의 두려운 인생을 상상했다. 버림받은 자기의 모습. 동료의료진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가족과 친지들과 이별.......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다. 이렇게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다시 한번 핀으로 어제 찔렀던 부분을 꼭 쑤셨다. 순간 그는 기절할 듯이 아파서 고함을 쳤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뛸 듯이 기뻤고, 그의 눈에서는 이제 감사의 눈물이 쏟아졌다.


긴 시간 기차 여행으로 앉아 있는 동안 신경의 한 부분이 눌려서 발이 마비상태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데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 후로 브랜드 박사는 실수로 손가락이 칼에 베었을 때도 그 고통에 감사를 했다고 한다. 발을 잘못 디뎌서 발목이 아파 펄쩍펄쩍 뛰면서도 그 아픔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버섯을 잘못 먹고 온 몸을 뒤틀면서 토하는 심한 고통을 당할 때도, 그는 하나님, 나의 고통에 대하여 감사합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고통을 안고 산다. 지금 내가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자체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요, 아픔을 느낄 만큼 건강하다는 표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고통 중에 부르짖어 하나님을 보다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고통은 복이며 감사의 조건이다. 시편의 기자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그런데 이것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절망 속에서 살아온 여인.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질병으로 인한 고통으로 절망과 소외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이 절망적이고 비참한 여인이 소망의 주님을 만나 질병의 고통과 소외로부터 구원받은 이야기다. 이 내용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도, 그리고 아무리 비참한 사람도 주님을 만나면 소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주님이 우리의 소망, 세상의 소망이심을 보여준 것이 본문이다.


이 여인은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이라는 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25). 본문은 간단하지만 그녀의 고통에 대하여 잘 묘사하고 있다. 혈루증이란 피를 쏟는 병으로 당시에는 한센스병 다음으로 저주스러운 난치병으로 생각했다. 레위기 15장에서는 이를 유출병이라고 하고 있는데, 정상적이고 생리적인 출혈이 아닌 그 밖의 다른 이유로 출혈하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을 받았고, 이런 부정한 몸으로는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당시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되고 버림을 받았다. 다른 사람과 접촉을 하면 그 사람도 부정하게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여인은 무려 12년 동안이나 이 병으로 고통을 받아왔다. 여기서 12란 단순한 시간의 개념이 아니다. 이것은 이 병의 성격과 이 여인이 살아온 삶을 보여준다. 성경에서 12란 완전수(3×4=12)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지파가 열둘이고, 예수님도 열두 명의 제자를 두셨다. 이는 이 여인의 병이 오래되어 심각하고 고치기 어려운 난치병이란 뜻이다. 또한 이 여인이 그 동안 받은 극심한 고통을 의미한다.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중하여졌던 차에”(26).


이는 이 여인이 지난 12년 동안 병으로 인해 육체적, 물질적, 정신적으로 받아온 고통에 대한 내용이다. 병을 고쳐보겠다고 많은 의원을 찾았다. 용하다는 의원은 다 찾아가고, 좋은 병원, 좋은 약은 다 먹어보았다. 그러는 동안 있는 재산과 재물을 다 허비되었으나 효험은 없었다. 고통만 커지고 병은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단지 재물만 사라졌겠는가?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그녀 주변에서 사람들도 사라졌다. 오직 혼자만 남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절망과 고독에 사무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모르는 세상, 예수님을 모시지 않는 영혼의 모습이다. 특히 많은 의원은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소망하는 것들을 상징한다. 그것들의 허구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예수님을 모르는 세상, 예수님을 모시지 않는 영혼의 비참함소망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 세상의 그 무엇에, 그 누구에게 소망을 걸고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일이다. 지난번에 희망가 1절을 소개했는데, 2절은 더 비참하다.


부귀와 영화를 누릴지라도 봄 동산 위에 꿈과 같고,

백년 장수를 할지라도 아침 안개로다.

담소화락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랴.

세상만사를 잃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있다. 내 자신에 대한 절망, 사람들에 대한 절망, 세상에 대한 절망이 주님을 찾는 첫 걸음이란 사실이다. 본문을 읽으며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왜 이 여인이 좀 더 일찍 주님을 찾지 않았을까? 예수님의 주요활동무대는 갈릴리 바닷가였다. 이 사건은 가버나움에서 일어났고, 가버나움은 갈릴리 바닷가에 있는 마을로 예수님이 많은 기적을 행하셨던 곳이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이미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을 가능이 크다. 그런데 왜 이제야 주님을 찾은 것일까? 자기에 대한, 세상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까닭이다.


참 소망을 향하여 나아가는 여인.

외경에 의하면, 이 여인의 이름이 베로니카’(Veronica)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를 넘어지고 쓰러지기를 반복하며 오르고 계실 때, 군중들 사이에서 뛰어나와 자기 손수건으로 예수님의 이마에 흐르는 땀과 피를 닦아주었던 여인. 그 때 그 손수건에 예수님의 거룩한 얼굴이 새겨졌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남긴 여인이다. 이 절망적인 여인, 비참한 여인이 참 소망을 향하여 힘차게 발을 내딛는다. 소망이신 예수님께로 나아간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27).


여기에 매우 중요한 동사 세 개가 나온다(밑줄 친 단어들). 듣고 와서 손을 댔다!이것은 이 여인의 인생에 전환점(turning point)이 되었던 요소들이다.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한 것들이기도 하다.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10:17). 주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시작된다. 그리고 믿음은 우리 안에서 소망을 일으키고, 그 소망을 향하여 행동을 하게 한다.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특히 예수님께서 자기와 같은 환자들을 치유하셨다는 소문을 들었다. 우리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는 부지런히, 그리고 기회있는 대로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사55:2,3). 또 하나는 주님에 대한 소문을 주변에 부지런히 퍼뜨리는 것, 곧 전도이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해야 한다(롬10:13~15). 들어야 하고 듣게 해야 믿음을 갖게 되고 믿음을 가질 때 우리의 삶과 인생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복음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구원이시고,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소망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소문을 들은 다음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기 위하여 무리 속으로 들어간 그녀의 행동이다. 성경은 이 사실을 생략하고 있지만 이는 목숨을 건 모험이고 도전이다. 그녀는 공개적인 장소에 갈 수 없는 병을 가졌다. 만약 사람들에게 발견되기라도 하면 어떤 수모와 해를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것을 무릅쓰고 주님께로 나아간 것이다. 이와 같은 그녀의 모험과 도전은 병을 낳고자하는 간절한 소망과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밖에 해석할 수가 없다. 이런 믿음의 모험과 도전이 있어야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


믿음의 만짐.

그리고 주님의 옷자락에 손을 댔다. 그의 옷에 손을 대니.여기서대다는 말은 단순한 만짐(touch)보다는 움켜잡다(seize)는 뜻이 더 정확하다. 의식적으로, 마음과 뜻을 두고 주님의 옷자락을 붙잡은 것. 무엇보다도 믿음으로 움켜잡은 것이다.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28).


그녀가 주님을 찾아가서 그의 옷자락을 붙잡은 이유이다. 그녀의 믿음과 소망, 그리고 확신이 담긴 말씀이다. 병 나을 것에 대한 소망과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만진 것이다. 특히 여기서 내가 그의 옷에 손을 대어도는, 그녀의 탁월한 믿음의 고백이다. 주님이 직접 만져주시거나 안수하여 주시지 않고, 자기가 만지기만 하여도, 그것도 주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 바로 이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주님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이 사건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기 위해 그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일어난 사건이다. 그래서 샌드위치 사건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성경기자는 이 사건을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사건 사이에 끼워놓고 두 사람의 믿음을 절묘하게 비교하고 있다(2328). 그녀는 이 믿음의 만짐을 통해서 오래되어 심각하고 고치기 어려운 난치병으로부터, 병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과 고독으로부터 구원을 받게 되었다(29). 그녀의 받은 믿음의 복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34).


기도는 믿음의 만짐이다.

이 믿음의 만짐이란 우리가 주님께 도움을 구하는 방법의 상징이다. 가장 효과적이면서 중요한 믿음의 만짐은 기도이다. 기도는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것과 같다. 그러나 여기엔 반드시 조건이 있다. 그것은 믿음이다. 기도 역시 믿음의 기도라야 한다(약1:6, 5:15). 이 기도가 우리를 살리고 우리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에드워드 머독(E. Murdock)이라는 배우의 일화다. 그가 하루는 링컨의 초청을 받아 백악관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그는 밤중에 우연히 잠에서 깨어나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되었다. 문을 열고 나와 보니 대통령집무실에서 나는 소리였다. 대통령이 늦은 밤 집무실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다.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 나라와 이 백성을 축복해 달라는 것과, 자신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머독은 대통령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아! 우리나라의 가는 길은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이 나라의 앞날은 소망이 있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저렇게 나라의 지도자가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축복해 주시리라는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 위대한 인물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다. 훌륭한 점이나 남보다 뛰어난 점이 있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이 함께 하심과 축복하심으로 위대해진다. 그러므로 참으로 훌륭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사람. 나는 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 그래서 늘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사는 사람이다. 이 여인처럼 절망적인 자신을 알고 소망의 주님께 나아와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붙잡는 사람이 주님의 은총을 얻고 능력을 얻고 복을 받는다.


주님은 우리의 소망이다.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주님을 찾아가 만나야 한다. 믿음의 손을 내밀어 주님을 붙잡아야 한다. 주님께 소망을 두고 믿음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그래야 내 삶도, 가정과 자녀도, 교회도, 국가도 소망이 있고, 회복이 있고, 축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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