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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비타민,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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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5,213회 작성일 08-11-0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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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비타민, 감사

시103:1∼5

2008. 1/2 11:00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토미 라소다(T. Lasorda)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LA 다저스(Dodgers)팀의 전설적인 감독이자, 박찬호 선수의 양아버지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그의 가정은 무척 가난하였다. 그런데도 그의 아버지는 늘 웃으면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토미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아버지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는 채석장에서 트럭을 운전하는 고된 일을 하시잖아요. 엄마는 관절염으로 병원에 다니고, 또 먹여 살려야 할 아이들이 다섯이나 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행복할 수가 있어요?

 

그때 아버지는 토미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야, 내가 왜 행복한지 알고 싶니? 나는 한때 빈털터리였다. 그런데 지금 내게는 멋진 아내가 있고, 착하고 사랑스러운 다섯 명의 아이들이 있지 않니. 게다가 좋진 않지만 가꿀 수 있는 집이 있고, 비록 고물이지만 타고 다니는 차도 있지 않니.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다. 얘야, 네게 웃음이 없다면 내 웃음이라도 빌려가거라!


토미 라소다의 아버지가 어떻게 이와 같이 말할 수 있었을까? 그는 일상 속에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 자기에게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들, 그것들의 소중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 만큼, 심지어 자기 자식마저 이해하지 못할 만큼 행복한 삶, 감사의 삶을 살았다. 부모는 자녀의 정신적 영적 환경이다. 매사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부모는 자녀에게 최상의 정신적 영적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자녀는 잘 될 수밖에 없다.


감사에 눈을 떠라.

감사는 소유의 문제가 아니다. 가진 것이 많다고, 많이 배웠다고, 권세가 있고 유명하다고, 남보다 많이 누린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감사에 대하여 전혀 새롭지 않는 일상에서 새로운 해석 요소를 찾아내서 즐겁게 누릴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다. 감사는 마음의 문제, 관점의 문제라는 것이다. 같은 문제라도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해석과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 똑같은 삶이지만 삶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삶 속에 스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들을 보기도 하고, 혹은 전혀 보지 못하기도 한다. 그 결과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만, 다른 사람은 원망과 불평의 삶을 살게 된다. 이것이 토미 라소다의 아버지가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감사하고 행복해하며 살 수 있었던 비결이다. 또한 이것이 감사의 힘이다. 감사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뚫고 행복으로 나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복해지려면 우선 감사에 눈을 떠야 한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가진 것이 많다고, 많이 배웠다고, 권세가 있고 유명하다고, 남보다 많이 누린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감사에 눈이 뜬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은 감사의 크기, 감사의 깊이에 비례한다. 탈무드에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감사의 문이 열릴 때 행복의 문 또한 열린다. 그러므로 감사는 행복 비타민이다. 본문은 감사에 눈을 뜨게 하는 비결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1. 기억하라(2).

감사는 그 동안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데서 시작된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속담처럼 은혜 속에 살면서도 감사하지 못한 이유는 그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문은 주께서 베푸신 모든 은택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주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죄에 대한 용서의 은혜다(3上).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 중에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것이다. 죄 용서 없이는 주님의 어떤 은택도 기대할 수가 없는 저주와 형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둘째, 질병의 치유에 대한 은혜이다(3下). 이는 단순히 육체적인 치료를 넘어서 정신적인 고통과 염려, 불안, 걱정을 치료하고 회복하신 은혜이다.

셋째, 파멸에서 구속하신 은혜이다(4上). 죽음처럼 고통스럽고 두려운 상황과 환경, 세력에서 구원하시는 은혜이다.

넷째,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는 은혜이다(4下). 즉 주님의 자비와 불쌍히 여기심으로 우리를 보호하신 은혜이다. 나아가서 왕과 같이 높임을 받을 것을 의미한다. 마귀의 자녀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축복의 대상이 된 것은 엄청난 은혜이다.

마지막, 좋은 것으로 소원을 만족케 하시는 은혜이다(5上). 주님께서 모든 좋은 것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은혜이다.


이와 같은 은혜들을 주님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베푸셨다. 주님이 베풀어주신 이런 은혜들을 기억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감사는 절로 나오게 될 것이다. 문제는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못함에 있다. 여전히 은혜 속에 살면서도 은혜를 은혜로 기억하지 못한 것이 문제이다. 풍성하고 충만한 삶, 건강한 삶, 감사의 삶, 행복의 삶을 사는 비결은 기억에 있다. 그래서 본문에서 시인은 자기 자신에게 명령하고 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2).


2. 생각하라.

영어로 감사(하다)란 단어(thank)와 생각(하다)이라는 단어(think)는 어원이 같다. 이는 감사하기 위해선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을 생각하느냐, 어떤 각도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감사할 수도 있고, 불평과 원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을 생각하고,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현재 내게 있는 것, 그리고 누리고 있는 것들에 집중하면 감사할 수밖에 없다. 감사에 눈을 뜨게 된다. 생각해 보라. 내게는 따스한 가정이 있고, 의지할 부모 형제가 있고, 일할 직장이 있고,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다. 또 일용할 양식이 있고, 입을 옷이 있고, 예배드릴 교회가 있고, 사랑을 나눌 지체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나 같은 죄인이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실을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헬렌 켈러는 나는 내게 있는 것을 생각하기에 너무 바빠서 내게 무엇이 없는가를 아쉬워할 겨를이 없다.고 했다. 이는 감사에 눈이 뜨인 사람의 아름다운 고백이라 생각한다. 행복이란 이런 자세로 인생을 산 사람들에게 주어진 복이다. 내게 있는 것에 집중하면 감사의식, 행복의식으로 충만하지만 없는 것에만 집중하면 비교의식, 불행의식의 노예가 된다. 모쪼록 우리는 내게 없는 것에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떤 시인이 이런 노래를 지었다.


내 삶에 고통만 없다면 나는 노래하는 자가 되리,

그러나 고통이 없다면 노래가 만들어지지 않음을 어이하리.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다. 생각에 따라 삶의 태도와 방향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시인은 고통이 없는 삶을 원하지만 고통이 없이는 인생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내 삶에 고통만 없다면 나는 행복(감사, 기쁨)한 자가 되리, 그러나 고통이 없다면 행복(감사, 기쁨)이 만들어지지 않음을 어이하리. 그러니 고통까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극적인 생각보다는 적극적인 생각,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생각, 믿음의 생각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들을 기억하며 생각해야 한다. 앞에서 소개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주님의 은택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본문의 하나님의 은택과 관련된 동사들의 시제는 모두가 현재분사 능동태이다.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하나님의 은택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임과 하나님의 이런 행위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사건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이 은택은 단순히 과거에만 주어진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현재도 계속되고 있고 묵상해야 할 생각의 대상이다. 주어진, 그리고 주어지고 있는 은혜에 대한 생각을 통해 감사의 눈이 떠지게 되고, 감사하는 삶이 된다.


3. 기대하라.

중세 시대에 수도사들은 신자를 라틴어로 비아토르’(viator)라고 했다. 비아토르는 여행자나 나그네, 즉 세상을 지나가는 자라는 의미다. 이 땅을 살아가는 신자의 삶이 어떠해야 함을 잘 표현해 주는 단어이다. 흔히 인생을 나그네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 신자는 본향을 찾아가는 나그네(혹은 순례자)라고 한다(히11:16). 같은 나그네라도 천국이라고 하는 목적지를 찾아가는 나그네란 뜻이다. 나그네에게 이 세상은 지나가는 여정(旅程)일 뿐이다. 그래서 나그네는 눈을 이 땅이 아니라 위를 향해 드는 사람, 세상의 뜻이 아니라 하늘의 뜻에 민감한 사람이다. 이것이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신자의 모습이다. 몸은 비록 이 세상에 있지만 마음과 생각, 관심은 저 천국에 있고, 천국에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살아가는 것이 신자의 삶이다.


이렇게 이 세상을 살면서도 천국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현재의 불편함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 생활이 고단하고 힘들어도 참는다. 환난과 핍박을 당해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며 찬양을 한다(행5:41). 왜냐하면 보다 나은 본향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이 눈물 골짜기 저 너머 위에는 끝없는 사랑만으로 쉴 곳이 있도다.”(찬535장 3절).


이런 기대가 있고, 소망이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감사이다. 채워질 것에 대한 기대, 이루어질 것에 대한 기대가 있는 사람은 현재의 부족이나 결핍을 불평하지 않는다. 믿음 안에서 감사하므로 기다린다. 본문은 하나님을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시는 분”(5)이라고 말씀한다. 좋은 것, 최상의 것으로 우리의 기대를 채워주시는 분이시라는 뜻이다. 바로 이런 하나님을 기대하고, 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하늘나라를 기대하고, 하나님께서 주실 소중한 은혜의 선물들을 기대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감사에 눈이 뜨인 감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신앙생활의 날씨는 감사에 의해 결정된다. 

날씨는 태양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구름에 의해 결정된다. 태양은 항상 밝게 빛나고 있으나 구름이 태양을 가리면 날씨가 흐려진다. 우리 생활의 날씨도 원망과 불평, 근심의 구름에 의해 결정된다. 감사의 햇살이 환하게 비치면 그 생활은 맑음이나 감사의 햇살이 불평과 원망의 구름에 가리면 흐림이다. 그리고 불평과 원망이 계속되면 그 생활은 불행의 장마 속으로 접어든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다. 나쁜 일들이 겹친 사람이라도 감사하면 행복한 사람이 되고, 좋은 일들이 겹쳐도 불평하면 불행한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행복이란 감사로부터 나온다.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고,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해 감사하고, 보는 것마다 감사하자. 감사하면 먼저 내가 행복해지고, 다음으로 상대방이 행복해지고, 주변이 행복해진다. 감사는 행복 비타민이다. 하나님은 감사의 그릇에 은혜를 담아주시고, 축복을 담아주시고, 기쁨을 담아주시고, 행복을 담아주신다. 할렐루야!


옛날 청교도들은 이런 기도를 자주 드렸다.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만 더 주십시오.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십시오. 이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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