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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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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3,802회 작성일 08-12-0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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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마4:1~11

2008. 12/7 11:00

사람의 일생

갓 결혼한 부부가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는 지하방에서 첫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그날부터 이 부부의 소망은 이것이었다. 우리만의 화장실을 가지고 싶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벌고 절약해서 작은 평수지만 화장실이 있는 아파트를 샀다. 너무 행복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끔씩 화장실 하나만으로는 불편했다. 때때로 바쁜 아침이면 서로 화장실을 차지하려고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은 다시 화장실이 두 개인 아파트를 소원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해서 화장실이 두 개 있는 아파트를 가지게 되었다. 첫 신혼을 지하방에서 보냈던 이들 부부는 이제 화장실이 두 개 나 있는 큰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이 그것을 얻게 되는 것만큼 시간도 흘러갔다. 화장실 두 개 있는 집을 얻기 위하여 이들은 젊음과 인생을 바친 것이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이지만, 단지 화장실이란 이름만 다른 것으로 바꾼다면 이것이 우리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지금껏 살아온 내 인생을 단순화시켜놓고 보면 여기서 그렇게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름답고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생령이 되게 하셨다. 그냥 흙이 아니라 말을 하고, 사랑을 하고, 생각을 하고, 활동을 하는 살아있는 존재가 되게 하신 것이다. 하지만 사단은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고 가치있게 살기보다는 무가치한 일, 무의미한 일에 시간과 수고를 하게 한다.


오늘 본문에서, 사단은 예수님에게까지 이런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본문의 사건은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신 다음 일어난 사건이다. 주님은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나가셔서 그곳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면서 앞으로의 사역을 준비하셨다. 그리고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여기에 중요한 세 개의 단어가 나온다. 광야, 금식, 그리고 시험이 그것이다. 바로 이 세 단어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첫째, 광야이다.

광야는 히브리말로 미드바르라고 한다. 이 단어는 말씀을 의미하는 다바르라는 말과 함께라는 의미의 부사 미드가 합쳐진 것이다. 이를 풀이하면 광야는 말씀과 함께 있는 곳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을 받는 곳이 광야이다. 그래서 성경은 광야의 삶을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곳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모세를 비롯한 엘리야, 세례요한, 사도바울과 같은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성장하고 성숙하는 경험을 가졌다. 주님도 이 광야에 서셨다. 물론 주님에게 무엇이 부족하거나 모자라서가 아니다. 우리의 모범으로서 우리로 주님의 자취를 따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친히 광야로 가신 것이다. 우리도 그곳에 서야 되고 그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철저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둘째, 금식이다.

광야는 삶의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에 있는 것 자체가 힘들고 어렵다. 그런데 주님은 그 같은 여건에서 금식을 하셨다.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40일 동안이나 금식하셨다. 금식이란 단순히 음식물의 공급을 끊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인간적인 모든 활동과 방법을 멈추고 전적으로 주님의 공급에만 의존하겠다는 선언이다. 특히 40일은 인간으로서 한계의 기간이다. 생명이 위협당할 수 있는 기간이다. 이렇게 금식한다는 것은 내 힘, 내 경험, 내 지혜, 나아가서 내 생명까지도 다 내려놓고 전적으로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이다. 이는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점검해 보아야할 문제이다. 많은 경우 믿는다 하면서 여전히 자신이 주인된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결국은 주님의 뜻보다는 자기의 뜻이 중요하고, 주님의 원대로 살기보다는 자기 원대로 살고, 주님의 길을 걷기보다 자기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때때로 금식과 같이 인간적인 활동과 방법을 멈추고 전적으로 주님의 공급에만 의존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셋째, 시험이다.

예수님은 사단에게 시험을 당하셨다. 아니 유혹을 받으셨다. 시험과 유혹은 차이가 있다. 시험(Test)은 우리를 강하게 하고 발전도록 한다. 그러나 유혹(Temptation)은 우리를 망하게 하고 망가지게 한다. 사단은 언제나 우리를 유혹한다. 유혹하여 우리로 망하게 하려고 한다. 망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그리고 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성장하게 하신다. 예수님처럼 성령이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시는 것은 우리를 강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사단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삶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가장 약한 순간, 가장 절실한 문제로 접근했다(2). 사단은 세 가지를 시험했는데, 첫 번째가 먹는 문제였다. 이것은 40일을 금식하신 주님께 가장 절실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또한 모든 인간이 해결해야 할 보편적인 문제이다. 오늘날과 같은 첨단과학시대에도 먹는 문제가 가장 핵심과제가 되고 있다. 40일을 굶었으니 얼마나 주리고 힘들었을까? 이는 두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바로 그 때 사단이 주님께 접근하여 먹는 문제로 유혹을 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3).


여기서 사단의 간교함과 함께 어리석음을 볼 수가 있다. 가장 배고픈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은 사단의 간교함이다. 그러나 비록 육체적으로는 주린 상황이지만 주님은 말씀과 함께 금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신령한 공급을 받고 있었다. 때문에 영적으로는 충만한 상태였다. 사단은 이점을 보지 못한 것이다. 사단은 육체적으로 주린 주님만 보았지 영적으로 충만한 주님은 보지 못한 것이다. 지혜로운 것 같으나 어리석은 사단의 모습이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함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아름다운 인생, 충만하고 행복한 인생은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소중히 여기고, 거기에 집중할 때 주어진다. 사단의 유혹에 대한 주님의 대답이 이를 잘 보여주고, 주님은 항상 이러한 삶을 지향하셨기에 사단의 유혹에서 명쾌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주님의 대답을 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하시니.”(4).


사단의 의도, 주님의 응답

이 첫 번째 시험에서 사단은 인간이란 떡을 위한 존재, 떡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3)는 주님을 향한 사단의 이 말은 주어진 신적 능력으로 자신의 굶주림이나 채울 것이지 하나님의 뜻과 같은 것은 생각지 말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능력을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이다. 인생을 아름답고 가치있게 살기보다는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일에 시간과 수고를 하게 한다. 반면에 주님은 인간에게 떡이 절실하고 중요한 것이지만 인간은 떡 이상의 존재라는 것, 인간에게는 떡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선언하셨다. 그것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주님이 친히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몸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또한 이 시험은 굶주림이라는 상황을 먼저 해결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나라도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유혹이다. 그러나 주님의 우선순위는 굶주린 상황의 해결인 떡이 아니고, 인간을 변화시키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4)고 말씀하신 것이다. 인간은 떡을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 떡 이상의 존재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야 한다. 이것이 아름답고 의미있는 가치있는 인생을 살 수 있는 비결이다.


앞에서 말한, 광야-금식-시험은 하나님의 말씀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아름답고 의미있는 가치있는 인생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거쳐야 할 중요한 영적 훈련과정이다. 우린 때때로 인생의 광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을 받고, 금식을 통하여 전적인 말씀의 공급을 경험하며, 시험을 통해 말씀의 능력을 경험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을 산다는 것은 인생의 광야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말씀 훈련의 기회로 선용하는 것이다. 인간적인 활동과 방법에만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40일을 금식하고도 돌로 떡을 만드는 것을 포기할 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밥을 굶으면서도, 불이익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면서도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11). 천사가 수종드는 삶을 경험하게 된다. 나는 여러분을 이 삶에 초대하고 싶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L. N. Tolstoi)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이는 톨스토이의 신앙관, 인생관을 잘 보여주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미하일 천사는 남편이 삼일 전에 죽고, 갓 태어난 어린 젖먹이 두 딸을 혼자서 키워야하는 엄마의 영혼을 데려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이 땅에 온다. 엄마는 천사에게 자기마저 가면 이 불쌍한 어린 아기들은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자기를 데려가지 말아달라고 애원을 한다. 천사는 이 엄마의 딱한 사정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게 되나 엄마의 영혼은 데려감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미하일 천사는 그 벌로 세상으로 쫓겨나게 된다. 미하일 천사는 세상에서 세 가지를 깨달아야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가 있었다. 첫째, 사람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둘째,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셋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였다.


미하일 천사는 자기를 거두어 따뜻하게 보살펴 준 구두장이 부부에게서 사랑을 발견하며 첫 번째 질문의 답을 찾았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어느 부자가 자신이 오늘 죽을 것도 모르고 일년이 지나도 떨어지거나 변형되지 않는 구두를 만들어달라는 모습에서 인간에게는 앞날을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셋째는 자기가 죽으면 어린 아기들도 죽을 것이라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엄마의 두 딸이 옆집 아주머니에 의해 잘 길러지고 있음을 보고 알게 되었다. 아주머니와 마을 사람들의 사랑으로 잘 자라고 있는 이 아이들을 보며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깨닫고 하늘로 올라가면서 미하일 천사는 말한다. 겉으로 볼 때 사람들이 스스로 돌보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랑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전 깨닫습니다. 사랑 안에서 사는 자는 하나님 안에서 사는 자요, 그 안에 하나님이 있으니, 하나님이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사랑의 자양분.

그렇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세상이 혼란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끊이지 않지만 사랑 때문에 유지가 되고 정화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주 듣는 라디오 프로에서 들은 사연이다. 한 청년이 어렵게 필기시험에 합격을 하고 면접시험을 보러가던 날 사고를 당하여 갈비뼈가 부러졌다. 의사는 입원하여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으나 시험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응급처치만 하고 시험을 본 다음 치료를 받겠다고 했다. 그러자 담당의사가 직접 자기 차로 이 청년을 시험장까지 데리고 가서 시험을 보게 한 다음, 면접관을 만나 이 청년의 사정을 이야기해주고 병원으로 돌아와 치료를 해주었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가슴 뭉클한 사연이었다. 이런 사람이 있기에 아직 우리 사회는 살만한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바로 이 사랑의 자양분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고 사람은 그 사랑을 먹고 산다.


오늘은 성서주일이다. 성경의 중요성을 생각하고, 성경번역과 보급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과 단체들을 위해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자는 취지에서 정한 날이다. 나의 삶을 아름답고 가치있게 만드는 비결, 사랑이 가득 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비결이 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말씀이 영의 양식이고, 힘이고, 소망이다. 인생의 닻이고 별이고 날개이다.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헌신하자. 그리고 이 말씀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물질로 기도로 후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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