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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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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3,475회 작성일 08-10-2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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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바이러스

느2:11~20

2008. 10. 26 11:00

베토벤 바이러스

요즈음 소위 보잘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꿈의 성취를 위한 도전의식, 자아실현과정이 잘 그려지고 있는 모 방송사의 수목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가 큰 인기다. 비록 드라마라는 가상현실이지만 오늘 우리가 처한 답답하고 힘든 현실에서 희망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이 드라마의 인기 비결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베토벤 바이러스와 희망 바이러스가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지난 9일(10회) 방영분에 흥미로운 장면이 나왔다. 폭우로 집도 전답도 잃고 절망에 빠진 수재민들에게 강마에(김명민 분)가 우락부락하게 생긴 수재민 대표에게 다가가 오늘 공연장에 와서 클래식을 들어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자 수재민 대표는 집도 잃고 먹고 살길이 막막한데 무슨 놈의 클래식이냐! 타박한다. 그러자 강마에는 자신도 어릴 때 가난했지만 클래식을 들으므로 꿈을 품었다며, 클래식을 통해 감동을 얻고 희망을 가지고 꿈을 키우라!고 한다. 수재민 대표는 계속 욕을 하다 강마에가 지휘한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을 듣고 감동을 받아 열렬하게 박수를 치는 장면이다. 드라마에서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저는 그 수재민들이 희망을 품고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느헤미야는 누구인가?

사람은 두 종류가 있다. 요셉의 형들처럼 다른 사람의 꿈을 찢고, 그것을 짓밟아버리는 사람이 있다. 부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언어로 다른 사람을 절망으로 몰아넣는 사람이다. 한 마디로 나쁜 바이러스를 가진 사람이다. 반면에 좌절의 늪, 절망의 구덩이에서 헤매는 사람에게 꿈을 심어주고, 그것을 소중하게 가꾸어 자라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 망한다. 안된다.고 하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곳에 된다. 할 수 있다. 해보자.라고 말하며 도전 의지를 갖게 하고 삶에 소망을 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주변을 밝고 아름답게 만들고 사람들로 꿈을 가지고 도전하게 하여 그 꿈을 현실로 만든다. 이렇게 주변과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긍정적인 언어를 퍼뜨리며 희망을 만들어가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위기가 도리어 기회라면서 희망을 노래하며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을 가리켜 희망 바이러스를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본문의 느헤미야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느헤미야는 제사장도, 예언자도 아닌 단순한 정치인이다. 페르시아 시대에 유대인 중에서 성공한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술 맡은 관원이란 높은 벼슬은 아니지만 신임이 두터운 심복(心腹)이라야 맡을 수 있는 직책이다. 게다가 제왕과 정치, 경제, 문화, 역사 등을 이야기할 수 있고, 나아가서 조언을 할 수 있을 만큼 학문적 소양도 갖추어야 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황제의 술 맡은 관원이었다(느1:11). 이는 그가 페르시아 황제에게 어떤 존재였으며, 그가 얼마나 탁월한 사람인가를 가늠케 해준다. 그런데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고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의 관심은 고국 예루살렘에 있었다. 그는 예루살렘이 성벽이 없어 주변 적들에게 자주 유린당한다는 소식에 슬퍼하면서 기도하였다(느1:4). 결국 그의 기도가 응답되어 유대지방 총독의 자격으로 예루살렘 성벽공사를 허락한다는 황제의 명을 받아 예루살렘에 돌아왔다(느2:8~9). 하지만 성벽공사는 쉽지 않았다.


직면한 현실의 벽들.

우선 느헤미야는 공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주변 사람들의 심각한 반대를 경험하게 된다. 본문에 느헤미야의 출현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이름이 나온다. 호른 사람 산발랏, 암몬 사람 도비야,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그들이다(2:10,19). 이들은 유다 주변에 있는 나라들의 지도자들이다. 이스라엘의 부흥을 싫어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온갖 모함과 협박과 방해로 예루살렘 성이 재건되는 것을 막아왔다. 이들은 느헤미야가 성벽 공사를 진행하는 내내 방해(조롱하고/4:1~3, 위협하고/6:1~2, 모함하고/6:6, 회유하여 배신하게 하고/6:10~14)를 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눈에 보이는 외부의 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부의 적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자주 현실의 벽들을 만나다보면 언젠지 모르게 마음속에 패배의식이 자리를 잡게 된다. 지금 느헤미야가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패배의식이었다. 이 패배의식이 오늘까지 예루살렘 성벽을 쌓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전에 성벽 공사를 시도하였으나 주변의 반대와 모함으로 실패하였다(스4:11~24). 과거에 실패한 경험은 마음속에 패배의식을 남겨둔다. 그리고 실패한 사람의 특징은 평생을 그 실패의 두려움 속에 갇혀 살게 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과 공동체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을 도모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벽을 돌파하라.

그렇지만 느헤미야는 이런 벽들을 잘 극복하여 성벽공사를 완공했다. 그것도 단 52일 만에 마쳤다(느6:15). 먼저 그는 외부의 적들을 향해 영적 권세를 주장(선포)했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명록(기억할 만한 전통)도 없다.”(20). 방해할 자격도 방해할 수도 없음을 선포한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세력이 있다(느2:10).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무너진 기도의 성, 사랑의 성, 섬김의 성, 비전의 성을 쌓고자 할 때 방해하는 영적 세력들이 있다. 우리의 영적 권세를 주장하고, 담대하게 영적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 우리의 영적 무기는 말씀과 기도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기도를 쉬게 만들고 말씀의 자리를 떠나게 만든다.


그리고 백성들을 격려하고 설득하였다(17~18/같이 읽음). 그의 격려와 설득은 현실직시(現實直視)를 통한 비전(희망) 제시였다.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17)는 것이다. 이런 희망 제시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체험적이고 고백적인 간증(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물증(왕이 내게 이른 말/왕의 조서)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때문에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백성들을 격려하고 설득하는데 성공하였다. 결국 이는 하나님이 도우시니 우리는 할 수 있고, 누구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는 말이다. 느헤미야는 사람들에게 안된다. 할 수 없다.고 하는 부정적인 생각, 패배의식 때문에 지난 200여 년 동안 방치했던 예루살렘 성벽 공사를 시도하도록 도전 의지와 소망을 주었다. 교회든 회사든 사회든 바로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사람이 바로 희망 바이러스이다. 이런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그 공동체는 희망이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온 세계가 경제적 위기로 인한 무척 힘든 상황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극단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런 현상을 나쁜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즉 지나친 위기의식이 더 큰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가정, 교회, 나라, 기업할 것 없이 모두 망한다, 안된다, 절망이다, 희망이 없다고 합창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위기는 기회다.라는 희망의 혁명을 믿는 사람이 에누 바이러스를 가진 사람이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긍정적인 말과 행동을 하며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다. 영혼과 마음에 대한 희망 바이러스를 가진 사람이다. 느헤미야는 주변과 주변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고 희망을 퍼뜨리는 희망 바이러스를 가진 사람이었다. 절망과 반대, 낙심,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의 노래를 잃지 않고, 행복과 희망을 퍼트리는 희망 바이러스를 가진 행복전도자였다. 느헤미야의 희망 바이러스 다음 전염자는 바로 오늘의 우리의 몫이다. 여러분과 저, 그리고 우리 교회가 이런 사람, 이런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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