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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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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4,442회 작성일 08-04-27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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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들

삼하19:31~39

2008. 4/27 11:00

가장 아름다운 손을 가진 사람에게 주기 위해, 천사가 하늘나라의 영광스러운 팔찌를 가지고 이 세상에 왔다. 천사는 아름다운 손을 가진 사람을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좀처럼 아름다운 손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사는 숲 속에 있는 한 외딴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마침 그 집에는 세 딸이 있었는데, 천사는 그들에게 자신의 방문 목적을 밝혔다. 그 말을 듣고서 첫째 딸이 나서면서 이렇게 말했다.

"천사님, 제 손을 좀 보세요. 얼마나 예쁜 손입니까? 제 손은 예쁠 뿐만 아니라 이 손으로 늘 꽃을 만지기 때문에 제 손에는 아름다운 꽃향기도 난답니다."

그러자 둘째 딸이 질세라 이렇게 말했다.

"천사님, 제 손을 보세요. 얼마나 깨끗한 손입니까? 저는 제 손에 먼지만 묻어도 곧 깨끗한 물로 씻고, 값진 화장품으로 잘 관리하고 있답니다."

이번에는 셋째 딸이 말할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도 셋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서 있기만 했다. 그래서 천사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셋째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는 왜 아무 말이 없니? 혹시 손이 없니?"

그러자 셋째 딸은 얼굴을 붉히면서

"천사님, 제 손은 보잘 것 없기 때문에 천사님에게 보여드리기가 민망스럽습니다. 저는 날마다 이런 저런 일들을 하다보니 손이 너무 거칠답니다. 거친 제 손이 너무 부끄러워 보여드릴 수가 없어요."

그 말을 듣던 천사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그러더니 그 천사는 자기가 가지고 온 하늘나라의 팔찌를 꺼내서 그 셋째 딸의 손목에 걸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며 섬기는 손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이란다."


그렇다. 섬기는 손이 아름다운 손이요, 섬기는 삶이 아름다운 삶이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바르실래처럼 섬기는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본문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지난 주일과는 다윗의 형편이 완전히 역전된 상황이다. 압살롬의 반역이 평정되어 다윗이 환궁하는 모습이다. 다윗은 배웅 나온 바르실래에게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자고 한다. 그 동안 여기서 섬김을 받았으니 이제 예루살렘에서 자신이 섬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르실래는 다윗의 호의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자원함으로 희생을 감수하며 섬겼던 사람이나 이를 기억하고 보답고자 하는 사람, 둘 다 참으로 아름답다. 이런 아름다운 삶을 본받자.


바르실래의 삶이 아름다운 이유

1. 나눔과 섬김의(베푸는) 삶.

세계 최고 갑부 중 한 사람인 투자왕 워렌 버핏(Warren Buffet)은 미국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지난해 그는 '자선의 대명사' 격인 빌 게이츠(William H. Gates) 부부보다 열 배가 넘는 돈을 기부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에게는 두 가지 신념이 있다고 한다. 검소한 생활과 상속은 오히려 자녀에게 독이 된다는 것. 부자 부모를 만났다는 이유로 남보다 특별한 삶을 사는 일도 문제지만, 그것은 자칫 자녀의 성취감까지 빼앗는 독이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재산상속은 미국정신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그의 생각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청교도 정신이다. 청교도 정신의 핵심에 청지기 정신이 있다. 모든 것의 참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것을 잠시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청지기)이라는 생각이다. 역사상 이 청지기 정신을 가장 성실하게 실천했던 사람들이 미국을 개척한 청교도들이었고, 지금도 이 청교도 정신이 미국 정신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미국부자들은 부의 사회적 환원을 의무를 넘어서 특권으로 여긴다. 아마도 역사상 부자들이 존중받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을 것이다. 부자들이 솔선해서 청지기 정신에 입각하여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무엘서에 두 명의 부자가 나온다. 한 사람은 갈멜 사람 나발이다(삼상25:). 그는 큰 부자였으나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주변을 돌아볼 줄 모르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 이름의 뜻대로(나발이란 이름의 뜻, 바보, 멍청이) 어리석은 자의 본보기가 되었다. 성경은 그를 불량한 자(삼상25:17), 즉 도덕적으로 무가치하고 사악한 존재로 평가한다. 또 한 사람은 본문의 바르실래다. 그는 자신의 부를 나눔과 섬김에 사용했고(삼하17:27~29), 그로 인하여 아름다운 이름을 얻었다. 학자들은 다윗을 섬긴 바르실래를 다윗에게 생수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광야에서 생수는 곧 생명이다. 바르실래가 다윗에게 어떤 존재였나를 짐작하게 하는 표현이다. 여기서 무가치한 삶과 가치 있는 삶, 부끄러운 삶과 아름다운 삶의 전형을 볼 수 있다.


바르실래는 구약에서 물질에 대한 청지기 정신을 바로 실천한 아름다운 사람이다. 나아가 예수님께서 지극히 작은 형제에게 하는 것이 곧 내게 한 것(Christ-guest)이라고 하신 말씀(마25:40)의 진정한 실천자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 주님 닮은 삶처럼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신자와 교회는 광야 같은 세상에서 생수와 같은 존재여야 한다.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 비결은 바르실래처럼 나눔과 섬김이 있는 베푸는 삶에 있다.


2. 자기 분수를 아는 삶.

몇 명의 아가씨들이 좋은 배필감을 찾아 휴양지로 갔다. 그곳에 도착해보니 5층으로 된 호텔이 눈에 띠었다. 그 호텔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그 호텔의 손님들은 대부분이 남자들이었다. 그래서 그 호텔에 묵으면 마음에 드는 남자를 사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투숙 수속을 하기 전에 어느 층에 묵을 지를 정하기 위해서 각층을 답사했다. 1층에는 키가 작고 평범한 남자들 전용이라고 적혀있는 표시가 있었다. 그 표시를 보고 그들은 바로 2층으로 갔다. 2층에는 키가 작고 잘생긴 남자들 전용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1층보다는 호감이 가는 층이었지만, 모두 3층으로 가자고 했다. 3층에 갔더니 이 번에는 키가 크고 평범한 남자들 전용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전보다 훨씬 호감이 가지만 그들은 그 층을 더 보고 싶지 않았다. 4층으로 올라갔다. 4층에는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들 전용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가씨들의 얼굴에는 희색이 가득했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설랬다. 4층에서 머물면서 남자들을 만나보자고 한 제안자도 있었다. 그렇지만 더 좋은 상대들이 5층에 있을 것 아니겠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5층으로 올라갔다. 5층에는 무슨 표시가 있었을까? 좋은 것을 아무리 주어도 만족을 못하는 여자들 전용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이것이 인간의 욕심이다. 인간의 욕심에는 한이 없다. 백만 원을 벌면 천만 원을 벌고 싶고, 과장이 되면 부장이 되고 싶고, 부장이 되면 사장이 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심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이 만족과 행복보다 불만과 불행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인간의 만족과 행복은 자기 분수를 알고 자족하는데 있다. 신앙생활에도 자족은 크게 유익하다(딤전6:6~10).


본문에서 크게 돋보이는 바르실래의 삶은 자기 분수를 아는 자족함이다. 욕망으로부터의 자유함과 삶의 균형 잡힌 성숙함을 엿볼 수 있다. 바르실래는 다윗의 청을 세 가지를 들어 거절한다. 첫째는 왕에게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35)는 것. 자신의 처지와 분수를 알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속 깊은 그의 태도를 보여준다. 둘째는 자신의 섬김은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36)는 것. 이는 자신으로 하여금 섬김의 기쁨과 보람을 간직하고 살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3)부모의 묘실 곁에 묻히고 싶다(37)는 것이다. 다이나믹한 삶보다 평화로운 죽음을 원한다는 뜻이다. 조용히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마지막을 준비하고 싶다는 소망이다.


바르실래는 감동을 주는 사람이다. 그는 다윗을 두 번이나 감동시킨 사람이다. 전에는 희생을 감수하며 기꺼이 섬기는 모습으로 감동시켰고, 이제는 깊은 신앙과 인격으로 감동시켰다. 바르실래는 정말 다윗의 생애에서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행복은 자족함에 있고, 아름다움은 자기 분수를 아는데 있다.


다윗의 삶이 아름다운 이유

3. 은혜를 아는 삶.

다윗의 미덕중의 하나는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이다. 자신에게 충성하고 은혜를 베푼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보상을 하기를 원한다. 원수는 돌에 새겨도 은혜는 물에다 새긴다는데, 은혜를 기억하고 보답하고자 하는 이것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본문에 다윗의 이러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33, 38). 이것은 단순히 빚을 청산하는 의미에서 보상이 아니다. 은혜를 잊지 않고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보답하려 하는 순수한 마음이다. 이와 같은 다윗의 간절함에 못 이겨 바르실래는 자기 아들을 부탁한다(37). 그리고 다윗은 바르실래의 아들 김함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간다(38).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윗이 38절의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는 사실이다. 그는 아들 솔로몬에게 마땅히 길르앗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저희로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예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왕상2:7)고 임종시에 은혜를 베풀도록 부탁한다. 또한 예레미야서에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41:17)이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그 의미는 김함의 거처란 뜻이다. 다윗이 바르실래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의 아들 김함에게 땅을 하사하여 그 곳이 게롯김함으로 불린 것이다. 호의를 베풀 줄 아는 노인과 은혜를 아는 왕의 친분관계는 점점 메말라 가는 인간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총선에서 가장 눈에 띈 선거문구는 모 정당의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습니다.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보면서 비정한 정치현실을 잘 반영해 주는 문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가 아무리 논공행상이라 하지만 자기 일에 대한 대가를 따지면서 충족되지 않으면 욕하며 돌아서고, 또한 자기 목적만 달성되면 은혜를 저버린 것은 비열한 짓이라 생각한다. 이런 현실을 볼 때 바르실래처럼 최선을 다해 섬겼음에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람, 다윗처럼 힘을 다해 입은 은혜에 대하여 보답하고자 하는 사람이 그립다. 


바르실래와 다윗은 우리 신자와 교회가 추구해야 할 아름다운 삶의 양면을 다 보여준다. 신자의 삶이란 그저 무한정 섬기고 봉사하고 헌신하고 충성하며 베푸는 것이요, 또한 받은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까 하는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사는 것이다. 그럴 때 세상에서, 그리고 주님 앞에서 우리가 아름다운 사람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옆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자.

아름다운 사람이 됩시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십시오.

아름다운 사람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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