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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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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4,586회 작성일 08-05-0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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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가정

엡5:22~6:4

2008. 5/4 11:00

닉 스티넷(Nick Stinnet)과 존 디프레인(John Defrain)이 함께 쓴 「건강한 가정의 비결」이라는 책에 건강한 가정의 비결 6가지가 소개되고 있다.


첫째는 가족 구성원의 헌신이다. 자신의 역할, 즉 좋은 남편, 좋은 아내, 좋은 부모, 좋은 자식이 되기 위해 자신의 역할에 헌신해야 하고, 서로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둘째는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셋째는 가족이 서로 이해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칭찬과 격려를 통해 서로를 세워주는 것이다. 가족은 이해관계나 경쟁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관계요, 사랑의 관계이다.

넷째는 가족간의 대화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대화가 잘 될 때 소속감을 주고 위기와 좌절에서 극복할 수 있게 한다고 한다. 가급적이면 서로 많은 대화를 하라.

다섯째는 영적인 건강이다. 가정은 신앙이라는 기초위에 세워져야 하고, 영적 원리들을 가정생활에서 실천해야 한다. 영적인 건강이 아름다운 가정의 비결이다.

여섯째는 위기를 함께 대처하는 것이다. 어려울수록 하나가 되는 가정이 건강한 가정이다. 문제가 없는 가정은 없다. 그런데 건강한 가정은 어려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풀어간다.


가정이란 사회의 가장 기초공동체이다. 인류타락 이전에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기관이다. 가정이 병들면 교회도 사회도 병들게 된다. 인류타락은 아담 가정의 타락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건강한 가정은 건강한 교회, 건강한 사회와 직결된다. 그러면 건강한 가정, 아름다운 가정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본문은 바울을 통해 에베소 교인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여기에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는 중요한 비결이 소개되어 있다. 가정 공동체에는 네 개의 기둥이 있다. 그것들은 남편이라는 기둥, 아내라는 기둥, 그리고 부모라는 기둥과 자녀라는 기둥이다. 이 기둥들의 충실성 여부에 따라 아름다운 가정이 결정된다. 


각자 위치에 충실하라.

1.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

성경이 부부관계를 주님과 교회의 관계에 비유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는 부부관계가 교회와 주님의 관계로 비유될 만큼 신비하고 거룩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서로 남남이던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된 것은 신비하고 거룩한 일이다. 본문은 이 거룩한 부부관계의 질서를 말씀한다. 이것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부부관계와 가정생활의 유지하는 비결이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5:22). 이는 남편의 리더십을 인정하고 세워주라는 것이다. 남편의 리더십은 스스로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세워주는 것이다. 남편이 우습게 보이고 못나 보여도 남편의 리더십을 인정해 주는 것. 이것이 건강한 부부생활, 성경적 가정의 첫 걸음이다. 우습게 보이고 못나 보인 사람일수록 존중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 성경적인 삶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명장 강감찬에 대한 일화다. 그가 거란군을 대파하고 돌아왔을 때 현종이 그의 승리를 축하해 주기 위해 큰 잔치를 베풀었다. 잔칫상을 받은 그가 밥을 먹으려고 밥그릇의 뚜껑을 여니 밥이 없는 빈 그릇이었다. 요즘에는 식사할 때 밥은 섭섭해서 먹는 것이고, 주요리가 따로 있다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밥이 주요리였다. 그런데 밥그릇이 빈 그릇이라니, 그것도 잔치 주빈의 밥그릇이. 이는 식사를 준비한 궁녀들의 실수였다. 이 사실을 왕이 알게 되면 식사를 준비한 사람들이 벌을 받게 될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이 때 그는 옆 사람에게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고 말하고 수라간으로 달려갔다. 그는 그들에게 밥그릇이 비었음을 알리고 속히 밥 한 그릇을 가지고 들어가서 장군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밥이 식었을까봐 따뜻한 것으로 다시 가지고 왔다고 말하며 그릇을 바꾸어 가게 했다. 그래서 위기를 넘겼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격과 명예, 그 자리까지도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배려하는 강감찬 장군의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관계의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깊은 배려를 통해 상대방을 세워주는 것이다. 경영주는 근로자를 근로자는 경영주를 세워주고, 상사는 부하를 부하는 상사를 세워주고, 목회자는 교인을 교인은 목회자를 세워 주어야 한다. 그래야 회사도 교회도 사회도 세워져가는 것이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가정에서 남편의 리더십이 세워져야 한다. 이 일에 중요한 키를 가진 사람이 아내이고, 또한 아내가 가정에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2. 남편들이여, 아내를 사랑하라.

오늘날 가정의 위기는 부부의 위기에 있다. 부부의 위기는 어느 한편의 일방적인 요구나 무시에 있다. 윤리란 상호적이다. 부부윤리도 마찬가지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가 올바로 행해질 때 아름다운 부부관계가 이루어진다. 기독교의 부부윤리는  이 둘의 조화를 강조한다. 아내들에게 남편에 대한 의무를 말씀한 성경은 이제 남편들에게 아내에 대한 의무를 말씀한다. 아내를 완전하고 올바르게 사랑하여 아내로 하여금 복종하는 삶 가운데 두려워하거나 고통당하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5:25). 남편은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교회에 대한 주님의 사랑은 자기 몸을 주신 희생적인 사랑이다. 남편이 이렇게 희생적으로 아내를 사랑할 때 아내 역시 두려움 없이 남편에게 복종하게 된다. 이와 같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를 베드로는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남편 된 자들아.......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은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벧전3:7). 귀히 여기는 것은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를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라는 것이다. 참 사랑은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소중히 여긴데서 시작된다. 베드로의 이 교훈이 바울의 것에 비해 다소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당시 상황을 이해한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오늘날 많은 아내들이 가정에서 상처를 안고 가슴앓이를 한다.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다. 남편들이 더 연약한 그릇으로 알고 귀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내에게 세밀한 관심을 가지고 귀히 여겨야 한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의 잘못된 편견 중 하나가 아내를 소중히 여기는 남편을 뭔가 부족한 사람 취급하는 악습이다. 이런 잘못된 사회적 편견과 악습에 도전장을 내고 성경 교훈대로 아내를 귀히 여기는 것. 이것이 희생적인 십자가 정신이고 사랑이다. 행복한 부부관계, 아름다운 가정은 남편의 아내를 귀히 여기는 태도와 아내의 남편의 리더십을 세워주는 태도에 있다.


3. 자녀들아, 부모를 공경하라.

어떤 분이 왜 에덴동산이 낙원인지 아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어떤 여성이 대답하였다. 하와에게 시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가정의 세태, 그리고 부모에 대한 자식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 같다. 가정의 또 하나의 관계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다. 부모와 자녀관계는 가정의 재생산이라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가정의 재생산은 부모와 자녀의 올바른 관계에 있다. 이 역시 부부관계처럼 부모와 자녀가 각 자의 위치에 충실함이 중요하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6:1,2). 기독교는 효의 종교다. 성경은 부모를 저주하거나 치는 자는 죽이라.(출21:15,17)고 명령한다. 그리고 십계명 중 인간에 관한 첫 계명이 부모 공경이고, 부모 공경은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비결이다(6:3). 여기서 공경하라는 말씀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부모를 편안하게 잘 모시는 것이다. 한자 효()란 글자를 보면 자식()이 늙은 부모()를 떠받들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이 공경이다.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편안하게 잘 모시는 것이다.


둘째는 부모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자기 부모를 부끄럽게 여기는 자녀들이 있다. 큰 불효다. 못나고 못 배우고 가진 것 없어도 부모를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공경이다. 나를 이 땅에 존재하게 한,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부모는 내게 있어서 가장 자랑스러운 존재다.


셋째는 부모의 자랑이 되는 것이다. 나의 존재가 부모에게 자랑거리가 되고, 나아가서 부모의 이름을 빛내는 것이 공경이다. 효경에도 효의 으뜸을 세상에 이름을 떨쳐서 부모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라(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했다. 부모가 살아계실 때나 돌아가신 후에도 올바르게 살아서 부모의 이름을 빛내는 자식이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부모를 공경하는 가정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가정이다.


4. 아비들아,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어떤 집에 대학입시에 떨어지고 재수, 삼수를 거쳐 장수에 들어간 아들이 하나 있었다. 아이가 집에 와서 공부를 하면 온 집안 식구들이 긴장을 했다.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미끄러진다. 떨어진다는 말은 입에도 담지 않았다. 밥을 먹다 젓가락이 떨어져도 아이고, 젓가락이 땅에 붙었네. 길을 걸어가다 미끄러져 넘어져도 아이고, 궁뎅이가 땅바닥에 딱 붙네. 


미국의 통계다.

8초마다 1명 청소년들이 자퇴.

26초마다 1명 청소년들이 가출.

47초마다 1명 유아들이 버려짐.

7분마다 1명 약물복용으로 청소년들이 체포.

36분마다 1명 총기사고로 청소년들이 죽어감.


우리 한국 사회에서 부모들의 가장 큰 짐, 그리고 가장 큰 염려와 걱정은 자녀양육이다. 자녀양육은 다음 세대를 위한 소중한 투자이고 가장 현명한 준비이다. 가정과 교회와 사회의 미래가 저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본문도 자녀양육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이렇게 말씀한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4). 여기에 세 가지 양육의 원칙이 나온다. 첫째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둘째는 오직 주의 교훈으로 양육하라. 셋째는 오직 주의 훈계로 양육하라.


한 가정 사역 연구소에서 자녀를 노엽게 하는 부모의 유형을 잘못된 운전에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1)과속형 /자녀에 대한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은 부모.

2)음주운전형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부모.

3)끼어들기형 /자녀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지 않는 부모.

4)뺑소니형 /자녀에 대하여 무관심한 부모.

5)경주형 /자녀를 자주 남과 비교하는 부모.


자녀양육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는 자녀의 존엄성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본문에서 '자녀를 노엽게 하다.'는 말씀은 '기를 꺾어버리는 것'의미한다. 자녀들의 인격을 무시하고 밟아버리는 것이다. 내 자녀라고 내 마음대로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다. 부모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부모와 똑같은 인격을 가진 존재다. 이와 같은 존엄성에 기초하여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한다. 이런 자녀를 통하여 건강하고 아름다운 가정이 세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가정을 떠나 살 수 없다. 가정에서 태어났고, 가정에서 자랐고, 가정에서 살다가 가정에서 죽는다. 가정이란 나무에서 남편이 뿌리라면 아내는 꽃이다. 부모가 줄기라면 자녀는 열매다. 튼튼한 뿌리에서 꽃이 만발하고, 건강한 줄기에서 풍성한 열매가 맺는다. 튼튼한 뿌리, 건강한 줄기, 꽃이 만발하고 열매가 풍성한 아름다운 가정을 위해 우리 모두 경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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